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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목포해양대학교 박물관

범선

바이킹선(VIKING SHIP)

바이킹선은 로마 제국시대에 스웨덴과 덴마크 부근에 살던 노르만족이 만든 선박으로 8-11세기경 노르만족은 이 바이킹선을 타고 지중해까지 진출하였다. 바이킹선은 주로 노를 쓰던 배인데, 폭과 깊이에 비하여 길이가 매우 길고 갑판이 없는 등 선형과 구조가 매우 간단한 선박으로, 북해의 거친 바다에 잘 맞는 선박이었다. 바이킹족에게는 귀인이 죽으면 배를 육지로 끌어올려 유해와 함께 땅 속에 매장하는 풍습이 있었다.
이 때문에 지금도 많은 바이킹선이 발견되고 있는데, 결국 바이킹선은 우리가 실물로 볼 수 있는 가장 오래된 배인 셈이다.
대형 바이킹선은 군함으로, 소형 바이킹선은 무역선으로 주로 이용되었다.

산타마리아호 (SANTA MARIA)

1492년 C. 콜럼버스의 제1차 항해 때 선단의 가함이다. 콜럼버스는 일행 90명중 40명과 같이 산타마리아호에 승선하여 핀타호와 니냐호2척을 거느리고 1492년 8월 3일 에스파니아 팔로스(Palos)항을 출항하여 신대륙 발견의 길에 올랐다. 적재능력 150t의 카라크(carrack)선으로 길이 23m 너비7.5m, 흡수 1.8m이며 돛대 3개, 5매의 돛이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40명의 승무원으로 카나리 섬을 경유하고 36일 동안의 항해로 대서양을 횡단하여 1492년 10월 12일 미대륙을 발견하였다.
그 당시 발견된 섬은 지금의 중앙아메리카의 바하마 군도에 속하는 곳으로 그는 이 섬에 '구세주'라는 뜻을 가진 San Salvador 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콜럼버스는 죽을 때까지 이 대륙을 인도의 일부라 믿었다고 한다. 그해 12월 산타마리아호는 Hispaniola(Haiti)의 해변에서 난파되었고 이 배의 부속등으로 약 40명의 인원이 수비를 하는 임시 요새인 La Navidad가 건설되었다.

커타삭호 (CUTTY SARK)

1896년 스코틀랜드 남부 클라이드강 연안의 던버튼에서 건조되었으며 총 톤수는 963톤, 전체 깅리 85m, 너비 11m, 최고 시속 31.4km이다.
마스트는 3개이고 돛은 34장, 돛의 총 면적은 3,047제곱 미터이다. 당시의 쾌속 범선 서모(Thermopylae)호에 대항하여 만든 차(Tea)운반용 쾌속범선이다. 1856년 런던의 차 상인들은 차 수송기간을 단축하기 위하여 런던에 가장 먼저 신차를 실어오는 배에 톤단 1파운드 상금을 걸었는데 커티삭호는 바로 이때 만들어졌다. 1884년에는 포르투칼의 해운업자에게 팔려 국적이 바뀌었고 1953년 커티삭 보존협회에 기증되었다.
현재는 그리니치의 드라이 독안의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커티삭이란 이름은 로버트 번스의 시 "샌터탐"(TomO'Shanter) 에서 마녀가 입고있던 짧은 속옷이름에서 따온 것이며, 영국의 유명한 위스키 커티삭은 이 배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엘카노호 (ELCANO)

21,350평방의 면적을 자랑하는 3개의 마스트를 가진 범선이다. 이의 모함은 Conneticut(미북동부에 있는주) 주의 CG Academy에 있으며 전 세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5개의 훈련용 Barques의 하나로 미해군 소속으로 되어있다. 1936년 만들어져 2차 세계대전을 거친 후 1946년 5월 15일 미국의 해안 경비업무의 역할을 하였다.

타이타닉호 ( TITANIC)

영국 화이트타사(社)가 1911년 건조한 대형 호화여객선으로 총톤수 46,328t, 길이 259,08m, 너비 28,19m, 깊이 19,66m이며 주기(主機)는 터빈의 삼연성기기(三連成汽機)의 조립으로 된 기관이다. 삼축선(三軸船)으로 속력은 22노트이며, 당시에는 4만t급 이상의 객선의 개척선이었다. 영국 사우샘프턴항(港)에서 뉴욕항으로 향하는 처녀항해 중, 1912년 4월 14일 밤 11시40분 뉴펀틀랜드 해역에서 부류빙산(浮流氷山)과 충돌하여 2시간 40분만에 침몰하였다. 이 사고로 승선자 2,208명중 1,513명의 희생자를 내어 세계를 놀라게 한 사상 최대의 해난사고였다. 이 사고를 계기로 배의 구조·구명설비·무선설비·유빙감시(流氷監視)등의 문제와 관련하여 해상의 인명안전에 관한 국제회의가 소집되어, 해난사고방지를 위한 국제적인 결정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게 되었다.

H.M.S 빅토리(H.M.S VICTORY)

빅토리아호는 지금껏 무시무시한 전함으로만 알려져 있지만 실은 1778년 건조되어 약 30년 동안이나 Trafalgar에서 비전투적인 활동을 하였다.
총 3500톤으로 길이 226feet, 폭은 51feet로 2500개 이상의 우수한 오크나무와 구리로 양 옆면이 보호되어 있었다.
그리고 4에이크 해당하는 36개의 돛으로 10노트의 속도를 낼 수 있다. 무기로는 35톤의 탄약과 120톤의 포로 3열 102개의 포를 장착 있으며 1마일 이상 떨어져있는 약 2피트의 나무를 파괴 할 수 있는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6개월 이상을 항해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하나의 요새라고 할 수 있으며 해전 참여 경험이 많은 함이었다. 결코 잊혀질 수 없는 영광과 용기의 싱징인 빅토리호를 기리기 위해 현재 영국의 Portsmouth에는 이 배를 복원 보존해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