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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사관학부 고광섭 교수, ‘이순신 항명설’에 대한 신문 칼럼 게재 등록일 : 2022-05-03

기획처 조회수 : 392
해군사관학부 고광섭 교수, ‘이순신 항명설’에 대한 신문 칼럼 게재 첨부이미지 : IMG_3430.JPG

왜곡된 이순신의 역사 재조명에 대한 획기적인 연구 결과로 학계와 언론의 비상한 주목을 받고 있는 우리 대학 해군사관학부 고광섭 교수의 2022년 4월 28일(충무공 탄신일 477 주년) ‘한겨례신문’ 칼럼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순신 항명설’ 이젠 수정돼야>


<해군사관학부 고광섭 교수>

4월28일은 충무공 이순신 탄생 477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충무공이 오늘날까지도 우리 국민들로부터 변함없이 존경을 받는 이유는 생전에 군인으로서뿐 아니라 공직자로서 정의로운 삶과 희생을 몸소 실천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충무공의 생애 중에서도 백의종군 때 보여준 감동적인 행적이 오롯이 전해지며, 오늘날에도 종종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고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 ‘가벼이 움직이지 말라. 침착하게 태산같이 무거이 행동하라’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사옵니다’ 같은 공의 어록이 호출되기도 한다.


이충무공이 삼도수군통제사에서 파직되고 옥에 갇혔다가, 벼슬이 없는 말단 군인으로 전쟁터에 나가 참전하는 백의종군을 하게 된 이유로는 정유재란 직전 조정의 출전 명령을 거부했다는, 이른바 ‘이순신 항명설’이 널리 회자된다. 선조수정실록 1597년 2월1일치 “순신은 ‘바닷길이 험난하고 왜적이 필시 복병을 설치하고 기다릴 것이다. 전함을 많이 출동하면 적이 알게 될 것이고, 적게 출동하면 도리어 습격을 받을 것이다’라며 마침내 (출전 명령을) 거행하지 않았다”는 기록 때문이다. 이를 근거로 ‘이순신 항명설’은 기정사실화돼 각종 역사서와 간행물 등에서 반복·인용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언론에서도 이를 재생산해 대중들은 이순신을 ‘국왕 선조의 부당한 명령을 거부한 소신 있는 장수’ 또는 ‘전시에 국왕의 출전 명령을 거부한 명예롭지 못한 지휘관’으로 평가한다.


과연 이게 사실일까?


오래전부터 군사전략가들 사이에서는 다음 두가지 점에서 이순신 항명설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견해가 제기돼왔다. 절대군주 시대에 적의 침공을 눈앞에 둔 변방의 장수가 국왕의 출전 명령을 어떻게 거부할 수 있는가? 싸움에서 물러서지 않는 게 이순신의 군사전략 아닌가?


필자 또한 이순신 항명설과 관련해 해군 초임장교 시절부터 합리적 의문을 가져오다가, 10여년간 연구한 결과를 지난해 이충무공 탄신 기념일을 기점으로 2회에 걸쳐 관련 학회에 논문을 발표하고 매체에도 공개한 바 있다. 선조실록과 이순신의 장계 등을 데이터화하고 집중 분석한 결과, 이순신의 정유재란 발발 직전 출전 거부설의 근거가 된 선조수정실록 1597년 2월1일 기사의 오류를 찾아내 발표한 게 1차 연구였다면, 2차 연구는 이를 뒷받침할 검증 작업 차원에서 진행됐다.


연구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이순신의 행적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정유재란 전후의 난중일기 기록이 전해지지 않아 당시 선조의 출전 명령을 받은 이순신의 행적을 명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이에 정유재란 당시 통제사 이순신을 직접 지휘했던 4도 도체찰사 이원익의 장계에 주목했다. 4도 도체찰사 이원익은 정유재란 때 선조의 명을 받아 통제사 이순신과 도원수 권율까지도 지휘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조정의 대신으로서, 한산도에 있는 통제사 이순신과 만나 작전계획을 논하고 협의하며 수군의 작전 상황을 수시로 조정에 장계로 보고했다.


다행히 도체찰사 이원익이 남긴 사료를 묶어 후세들이 제작한 오리선생문집에는 정유재란 전후 변방의 수군과 육군 지휘관들을 만나 작전지휘를 했던 내용을 보고한 귀중한 장계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원익의 장계는 직접 국왕에게 쓴 전황 보고서로 당시 조선 수군의 작전계획을 알 수 있는 결정적 사료다. 오리선생문집에는 이원익이 정유재란 발발 전 부산 앞바다로 출병한다는 이순신의 작전계획을 수차례에 걸쳐 선조에게 보고한 장계가 수록돼 있었다. 특히 정유재란 발발 첫날인 정유년(1597년) 1월12일 장계에는 ‘가덕도의 동쪽 바다에 나아가 정박하여 장소포에 진을 치기도 하고 혹은 다대포의 앞바다에 진을 치기도 하면서 기회를 보아 맞아 싸운다’는 이순신의 부산 출전 계획이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성품이 소박하고 단조로워 과장이나 과시와 거리가 멀고 정의감이 투철했던 명신인 이원익의 장계는, 이처럼 선조수정실록의 기록과는 정반대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이충무공 사후 약 60년 뒤 완성된 선조수정실록의 기록이 잘못된 것임을 분명하게 가리키고 있다. 이로써 이순신 사후 수백년 동안이나 왜곡돼 전해지는 이순신의 출전 거부설, 이른바 이순신의 항명설 실체가 밝혀진 셈이다. 이충무공 탄신 477주년 기념일을 맞아 우리가 몰랐던 이순신의 역사가 새롭게 조명되기를 기대한다.



기사 원본: https://www.hani.co.kr/arti/opinion/because/1040624.html